사옥 2층/도서실

'또 하나의 약속' 감상평.(스포일러 아주 많음)

리나인 2014. 2. 7. 20:34



또 하나의 약속 (2014)

Another Family 
9.7
감독
김태윤
출연
박철민, 김규리, 윤유선, 박희정, 유세형
정보
드라마 | 한국 | 120 분 | 2014-02-06


나는 일년에 영화를 한편에서 두편 정도 보는 사람이다.(영화관에 가서 보는것을 기준으로 한다)

작년만 해도 설국열차와 변호인 단 두편의 영화만을 보았다.

그러므로 연초부터 (연초라 한들 2월이지만) 영화를 본다는 것은 내게는 굉장히 새삼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그런 '새삼스러운 일'을 하게 만든 영화가 바로 이 '또 하나의 약속'이다.

어쩌다 보니 이 영화의 탄생과정을 알게 되었고 그러면서 기다려 왔다. 기대를 하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불안함이 있었다.

화려한 휴가와 26년이 걸어갔던 그 길이 떠올랐다. 뜻은 좋았으나 영화적 완성도가 아쉬웠던 두 작품이었다.

영화는 일단 영화다. 영화로써의 재미와 완성도를 무시할 순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제작비조차 쉬이 구하지 못하고

우여곡절을 겪는 이 영화를 기다리는 나의 마음도 풍랑 속과 같았던 것이다.


그랬던 영화가 팟캐스트 '이이제이'에서 다뤄진 후 예고편 조회수 백만을 찍는 것을 보며 조금은 나와 같이 이 영화를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확인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수익분기점은 70만, 과연 가능할까..


과연 가능할까..에 대한 대답은 지금 해 보고자 한다.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라는 것으로.

아침 10시 10분 상영의, 약간은 외진 위치인 CGV 서면에서도 관의 약 60% 이상은 차 있었고, 그 수는 70여명은 족히 되리라 생각되었다.


법정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얼마전에 개봉한 변호인과 비교를 하지 않을래야 머릿속에서 자연스레 비교가 되는 영화였다.

변호인이 송강호라는 거인의 압도적인 존재감이 끌고 나가는 영화였다면 또 하나의 약속의 박철민은 약간은 다른 역할을 하고 있었다.

박철민, 해학적인 연기를 잘 한다는 평을 받지만 늘상 보여주는 이미지가 비슷하지 않은가 라는 평도 없지 않았다.


또 하나의 약속이라는 영화에서 박철민은 분명 극의 중심에 있지만 극을 끌고나가는 느낌이 아니라 극이 박철민이 걸어가는 길을 감싸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평소와도 같은 연기이면서도 평소보다도 더욱 더 진한 페이소스가 묻어나는 박철민의 연기는 충분히 호연이었다.


나는 사실 그렇게 감정이입을 잘 하는 사람은 아니다. 슬프다 슬프다 해도 눈물을 흘린 것은 손에 꼽는다. 변호인을 보며 눈물흘렸다는 사람이 많지만

나는 변호인을 보면서 눈물 고인적조차 없었다. 노무현이라는 인물에 대한 강렬한 그리움과 회상이 들긴 했지만...

그러나 이 영화에서 나는 세번 눈물을 글썽였고 그중 한번은 걷잡을수 없을 뻔 까지 했다.

택시에서 죽어간 윤미.

진성이라는 거대한 자본권력 앞에서, 돈도 아는것도 없는 아버지 상구. 아들과 아내마저도 믿어주지 않는 아버지. 딸을 사지로 내몰았다는 아들의 외침을 받아내는 아버지. 추모행렬 선두에 선 아버지와 그를 진압하는 용역업체 직원으로 만나게 되는 아들...


극적으로, 윤미의 어머니(윤유선 역)는 윤미의 일기를 읽으며 윤미가 바랬던 것, 상구가 하는 것을 이해한다. 그 자리는 죽은 윤미의 생일상.

윤미의 일기를 보며 탕자의 길에서 돌아오는 윤미의 동생 윤석(유세형 역)...

한 가족의 붕괴와 극적인 봉합은 나에게 충분히 고통과 감동을 주었다. 그 장면들은 너무도 슬펐다. 아내마저도 이해해 주지 않는 상구. 딸 목숨값을 받아내려 한다는 주변의 말...



이 영화에서 나는 한가지 반전의 망치를 얻어맞았다. 교익(이경영 역)의 부하로 나오는 도영과 종대를 보며 이 둘이 재판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겠구나 하는 것은 직감이 왔고, 그 둘 중 한명이 배반을 때리겠구나 하는 느낌도 강하게 받았다. 

첫인상을 보니 도영은 유약해 보였으며 종대는 배짱있어 보였다. 실지 극에서 보여주는 행동도 그러하였다.


그런데 유혹당한건 오히려 종대였으며 최후의 순간에 떨면서라도 진술을 한 것은 도영이었다. 재미있는 모순이었다.

절망하여 쓰러져버린 상구에게 도영을 찾아가라 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회사를 버릴수 없다, 나는 절대 일어나서 회사로 돌아간다' 라는 교익이었고

(도와줄 순 없지만 쓰러지지 않게 해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방향은 달랐지만 그를 위한 방법은 같았으니까.)

덜덜 떨면서도 증인이 되어 진술을 한 도영이 진술을 한 가장 큰 이유는 '본인도 아파서' 였다. 얼마나 인간적인 이야기인가.

모두가 상구처럼 싸우지는 못한다. 우리 평범한 범인이라는 존재들은 다들 그렇지 않은가. 나만 아니면 괜찮다... 나는 아니니까... 저사람들도 이해는 가는데....

그런 순간에서 '나도 그렇게 되었다' 가 되어야 일어설 수 있는 사람들, 아니면 그런 상황에 와서도 '결국은 도장을 찍고 마는' 사람들...



변호인의 결말에서 송우석은 승리하지 못하지만

또 하나의 약속에서 상구는 승리한다. 물론, 상구만 승리했을 뿐 나머지 3명은 패소, 그리고 확정이 아닌 기나긴 항소의 세월이 남았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정말 유일하게, 직접적으로 관객들에게 사회 모순을 항의하는 구절은 딱 하나 나온다.

관객에게 상구의 행동으로 보여주는 모습이 아니라 직접 관객에게 웅변하는건 이게 마지막이다.

산재를 인정받는데 있어 그 책임이 회사에 있다는 것을 피해자가 입증해야 되는게 말이 되는가....

분명히 재판의 상대는 근로복지공단인데 근로복지공단은 어느 새 투명한 중간자의 입장으로 가버리고

그 대리 검투사로 회사인 진성이 나서는 아이러니한 모습...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단 하나다. 제목.

원제였던 '또 하나의 가족'은 자기검열로 '또 하나의 약속'이라는 현재의 제목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삼성 비판이니 뭐니를 다 집어치우더라도 제목은 원 제목이었던

'또 하나의 가족'임이 더 어울렸을 거라 생각됐다. 딱 그 점 하나가 아쉬웠다.




이 영화가 다른 '영화를 잘 아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아쉬운 점이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그렇게 영화를 잘 알진 못한다. 내가 감동받을수 있었다면 좋은 영화였다고 말할 정도로밖에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나는 이 영화를 좋은 영화였다고 말할 거다.

봐도 후회 안할거라 말할 거다. 꼭 봐 달라고 말할 거다.